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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카트리나에 핀 하늘 성전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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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20회 작성일 20-05-2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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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에 핀 하늘교회


세월이 너무나 빠른 것 같다. 미국 남부의 심장 도시인 New Orleans를 바다 물속에 잠기게 했던 카트리나 태풍이 몰아닥친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되었다. 그때 태풍이 수천의 집들을 삼키고 엄청난 재앙이 닥쳤는데도 내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를 않았다. 왜냐면 사랑하는 장로님이 그 시각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 교회는 거대한 태풍보다 아픈 고통을 함께 겪어내야 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에 New Orleans에 직접 가볼 기회가 생겼다. 사실, New Orleans는 Mississippi주에서 신학을 공부한 내게는 익숙한 도시였다. 가끔 시간을 내서 동료 신학생들과 그곳에 가서 French 도넛으로 유명한 Cafe De Monde에서 도넛과 커피도 마시며 미국 남부 문화의 정취를 즐겼던 곳이었다.
3개월이 지났는데도 도심으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는 제대로 개통도 안 되어 있었다. French Quarter만 겨우 복구되어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그곳은 환락의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겨우 방을 얻어 하룻밤을 자고 이른 아침에 수해현장을 찾아갔다. 운전을 하고 한참을 돌아다녔어도 창밖으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침수지역은 쓰레기 야적장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썩은 쓰레기 냄새를 맡고 모여든 수많은 파리 떼들, 해수로 잠겼던 집과 건물들이 냄새를 풍기며 무너진 채로 썩어가고 있었다.
목사인 내 눈에는 그 중에서도 교회들과 교회간판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침수된 지역은 검은 사람들만 사는 빈민촌의 슬럼가였지만 정말 교회가 많았다. 한 블록, 한 블록을 지날 때 마다 어김없이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들은 망가진 건물만 있을 뿐, 성전을 찾아오는 사람도, 보수 작업을 하는 사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한 곳에서 복구 작업을 하는 모습을 멀리서 발견하였다. 차를 몰고 가보니 그곳은 다름 아닌 교회 건물이었다. 난 너무 기뻤다. “그렇다! 이래야 맞다!” 속으로 외치며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방독면을 쓰고 썩은 의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니 그중 한 사람이 방독면을 벗는데 의외로 그 교회 담임목사도 집사도 아닌 어느 백인여성이었다. 자기는 필라델피아에서 온 선교팀 중의 한 사람이라고 했다. 일주일째 성전을 복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한 명도 이 교회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런데 왜 복구를 하십니까? 대답은 간단했다. “이곳이 하나님의 교회이니까요! 성전을 복구하면 수재민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에 이곳이 그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가슴에서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 교회가 이렇게 귀한 것이다. 시편 84편에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오직 교회만이 무너진 세상,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는 것이다.
요즈음, 나는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면서 지상 교회와 하늘 교회의 차이를 보게 되었다. 계시록에 보면 하늘 교회와 오늘날의 지상 교회가 너무나 달랐다. 계11장에 보니 하늘의 전을 척량할 때에 척량도구가 ‘갈대’였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흔한 갈대였다. 그러면 하늘 교회는 어떠할까가 궁금해졌다. 하늘의 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솔로몬의 아름다운 백향목 성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열두 진주와 보석으로 지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계15장에 나타난 하늘성전은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하늘의 전은 ‘아름다운 보석’이 아닌 ‘장막’으로 지어졌다. 모세가 광야에서 장막성전을 지은 것처럼 하늘에도 장막으로 된 성전이 있었다.
나는 하늘의 장막성전을 보면서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되었다. 현대를 사는 성도들이 왜 교회를 향한 사모함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상성전과 하늘성전이 다르다는 거였다. 하늘성전이 참된 성전의 모습이라면 지상성전도 그 본질을 따라야 하는데 그 본질을 외면하고 있었다. 하늘성전은 그 척량 도구가 ‘갈대’였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신다고 하신 갈대였다. ‘사랑의 갈대’가 지상교회의 척량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숫자, 헌금, 지식, 권위와 교파다. 나는 이것을 ‘금갈대’라 말하고 싶다.
성전 자체도 마찬가지다. 하늘성전이 장막인 이유는 예수님이 친히 성전이 되심으로 영광의 빛이 있기에 보석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상성전은 화려한 건물로 예수님의 영광을 대신하려고 하니 점점 더 요란해지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감히 외치고 싶다; ‘지상교회들이여, 하늘성전을 본받으십시다. 금갈대를 던져 버리고 갈대로 척량을 다시 시작합시다. 사랑의 갈대가 중심이 됩시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지상교회도 되찾으십시다.’
언젠가 다시 New Orleans에 가게 되면 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다. 사랑의 갈대로 다시 핀 지상성전에서 하늘성전을 경험하고 싶다.

정 철 목사 (새생명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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