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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Via Dolorosa”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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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53회 작성일 20-05-2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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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 Dolorosa”

얼마 전에 산버나디노 Hemet에 있는 말 목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목장에서 멀리 떨어진 북편 산에는 아직도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지만, 동서 양편으로는 작은 산들로 둘러싸여져  있는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은 말을 키우기에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저곳에 말을 키우는 목장이 많이 보였다. 내가 방문한 목장은 말을 재활 훈련시키는 특수목장이었다. 대부분이 경주마로 치료중인 말들도 있었지만, 치료를 마친 말들은 기수를 태우고 레이스코스를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경주마 한마리가 내 앞으로 다가오는데 위용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용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있자니 미국인 목장주인이 말 사진을 들고 와서 이 말은 자기네 농장 출신인데 산타아나 경주장에서 우승을 해서 금년도 Kentucky Derby에 출전권을 획득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가격이 몇 백만불 이상을 호가한다는 것이다. 나는 옆에 있는 경주마를 가리키면서 이 말은 얼마나 갑니까? 물었더니 퇴출대상이라 몇 백달러만 주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가볍게 말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입성하시는데 명마는 아니더라도 퇴출한 말이라도 타셨으면 얼마나 좋으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무슨 경주를 하실 것도 아니셨고 예루살렘에 입성만 하시면 되었으니 말이 성치 않아도 예수님 한분을 못 태우랴. 그리고 멋진 폼으로 마지막 가는 고난의 길을 장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은 고사하고 나귀 그것도 한 번도 사람을 태워보지 않은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다. 스가랴 선지자는 그 이유를 예수님이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셨고 그것도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말 예수님은 나귀와 나귀새끼 중에서 작은 나귀새끼를 선택하셨다.
그래서 나는 고난주간은 주님의 겸손을 배우는 주간이라고 생각한다. 겟세마네동산에서 주님이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선택한 것도 겸손의 절정이셨다. 더 놀라운 것은 부활하신 몸에서까지 겸손의 자국을 지니고 계셨다는 것이다. 의심하는 도마에게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고 한 것을 보면 창에 찔린 상처 자국이 남아있는 채로 나타나 보이신 것 같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참 모습은 계시록1장에 나오는 것처럼 해처럼 빛나는 영광의 왕의 모습이어야 할 것 같은데, 이것이야 말로 겸손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오늘날의 고난절과 부활절을 맞이하는 신앙인의 관심은 고난의 본질이 아닌 행사를 치루는 프로그램에만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고난의 길을 가면서 보여주신 주님의 겸손이 십자가와 함께 성도의 삶 가운데 나타나야 하는데 행사를 멋지게 치루려고 하다 보니 본질은 사라지고 스스로의 만족이 못자국난 주님의 손을 부끄럽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예루살렘 입성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주님처럼 고난의 길(Via Dolorosa)을 겸손하게 앞서서 가는 본을 보여야 하겠다. 수난절에 불리어지는 Via Dolorosa(고난의 길)의 가사에 보면 “...사람들은 말을 했네, 이젠 모두 끝이라고,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자신마저 구원 못한 그는 메시아일 수가 없다고, 갈보리의 그 길만이, 진정 구원의 길인 것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너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주님을 그 길을 가셨네, 갈보리 길...” 우리가 고난의 길, 갈보리 길을 걷기를 기뻐하게 되면 진정한 “호산나”의 찬미 소리가 예수님의 입성 때처럼 백성 중에서 울려 퍼지게 될 것이다. “Down the Via Dolorosa, all the way the Calvary~".
새생명장로교회 정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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