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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니므롯과 나라"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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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41회 작성일 20-05-2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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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므롯과 나라”

미국의 경제가 불황의 늪에 허우적거리고 있어 우리 이민자들은 여간 걱정스러운게 아니다. 자동차 산업의 수장격인 GM이 파산의 조짐이 보일 정도로 심하게 휘청거리고 있다. 부동산재벌로 세워진 Indymac Bank도 도산할 위험에 처하자 돈을 인출하려는 고객들이 은행 앞에서 무려 10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모습을 신문은 보도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오일달러로 치부하는 나라들도 있다. 중동을 비롯하여 러시아는 근세에 보기 드문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나라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 세계의 곡물 량의 감소와 가뭄으로 오일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곡식을 사야할 때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시대가 겪고 있는 chaos(혼란)의 이유는 인위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현대의 모습이 창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의 사건과 하나도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의 “바벨”이란 뜻도 똑같이 ‘chaos-혼돈’이다.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는 인간들을 흩으시고 ‘혼돈’케 하신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벨탑을 쌓았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었기 때문이었다.
성경고고학자들이 앗수르(시리아)의 궁전에서 20만장의 점토판을 발견했다. 바벨탑의 사건을 기록한 서사시였다. 그 내용이 무시무시하다. 인간들은 바벨탑의 벽돌을 자기 신들의 피를 섞어서 만들었고 벽돌마다 신들의 이름을 써 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학자들은 그 이름을 ‘황금의 왕’이란 뜻인 “에누마 엘리쉬”라고 붙였다. 바벨탑은 탑이 아니라 황금을 우상으로 하는 세상의 신들을 숭배했던 신전이었다.
성경은 높고 거대하고 화려한 바벨탑을 만드는데 진두지휘한 장본인을 “니므롯”으로 지목하고 있다. 창10장은 니므롯을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고 말했다. 사실,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영걸”은 “니므롯”보다는 노아의 홍수전에 등장했던 창6장의 “네피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네피림은 그 이름의 뜻대로 ‘힘’으로 세상을 정복했다. 거기에 반해 니므롯은 전혀 다르다. 그는 그 이름대로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세상의 권세를 쥔 너무나 “특이한 사냥꾼”이었다. 바벨탑을 세운 이유가 하나님을 배반한데 있었다.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니므롯은 세상의 권세를 쥐었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등장하는 바벨론 제국이 무너진 모습도 똑같다. “큰 성”인 “바벨론”에는 니므롯의 권세와 같은 “짐승”의 권세가 있었다. 온갖 더러운 영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동시에 바벨론은 화려함과 풍요의 극치를 누리고 있었다가 순식간에 불로 멸망하였다.
오늘날 세상도 추구하는 것이 바벨론과 같다. 분명한 것은 바벨론은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의 미국은 청교도들이 가졌던 하나님의 나라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남아있는 것은 예전에 누렸던 풍요의 허풍과 실속 없는 권세다. 미국의 더 큰 불행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링컨과 같은 영적인 대통령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조국의 현실도 미국과 다를 바 없다. 남한은 지난 반세기를 풍요를 우상으로 하는 바벨론 제국화에 여념이 없었고 북한은 니므롯처럼 하나님을 배반하는 권세를 쥐고 권세자의 우상을 3만개를 세웠다는 사실에 조국을 보는 영적인 눈을 우리는 떠야 할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더 이상 세상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되겠다. 세상에 소망을 두면 둘수록 얻을 것은 바벨론뿐이다. 우리의 소망은 나라도 권세도 오직 하나님께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에서 이렇게 끝을 맺도록 하셨다: (마6:13) “...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새생명장로교회 정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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