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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우생순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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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669회 작성일 20-05-2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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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우생순”

북경 올림픽이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뜨겁게 지구를 달구고 있다. 개막식에 이어 연일 들려오는 조국 선수들의 금메달의 소식은 우리 한인들에게 무척이나 활력소가 되고 있다. 특별히 수영에서 박태환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미국 선수로는 마이클 펠프스가 연일 수영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의 영웅으로 등장했다. 펠프스는 신장이나 팔 길이, 그리고 8500cc나 되는 폐활량 등, 어떤 면으로 보면 타고난 영웅이다. 거기에 비해서 모든 면에서 열세이지만 한국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분전은 자랑스럽다. 아줌마 부대로 알려진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 “우생순”으로 제작되어 진한 감동을 주었었다.
나는 개막식을 보면서 그 화려함과 웅장함에 매료되기 보다는 개막식에만도 1억불을 쏟아 부었다는 중국 정부의 의도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화려한 쇼의 연출자는 장예모라는 영화감독이었다. 장감독은 문화혁명 때는 반동분자의 아들로 낙인이 찍혀서 학업대신에 방직공장 직공으로 일을 했다. 공원으로 일하던 그가 사진에 매료되어 사진기를 구입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팔았다고 한다. 27살때에는 베이징 영화 학교에 입학을 하려 했지만 나이가 많아 거절당하자, 그렇게 산 사진기로 찍은 40개의 사진 작품집을 담당자에게 보였고, 천재성을 인정받아 특차로 입학한 후 배우를 거쳐 영화감독이 되었다. 장감독은 작품을 통해서 공산당보다는 민중의 편을 들었고 민중을 영웅으로 부각시켰다. 그 예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영웅”이란 영화를 들 수가 있다. 이 영화에서 진시황을 살려주는 무명의 영웅이 등장한다. 그러나 오직 자신만이 영웅이 되기 원했던 진시황은 “무명의 영웅” 한사람을 죽이기 위해 수십만 명의 군사를 동원하고 수십만 개의 화살을 쏘아 죽게 만든다. 그러했던 장 감독이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영웅이 더 이상 무명의 민중이 아닌, ‘나라’ 즉 ‘중화’라는 힘과 권력으로 바꾸어 연출한 것이다.
나는 현대 신앙의 위험성이 다름 아닌 이와 같은 변질에 있다고 생각한다. 로마서1장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세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고 경고하고 있다. 1억불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만큼이나 개막식은 화려했지만 그 경이감은 단 며칠을 버티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 선수층이 두텁지 못해 아줌마 선수들이 뛸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도 강적 러시아를 9점이나 뒤지다가 회복을 한 여자 핸드볼은 분명 ‘우생순 2’였다. 개막식의 화려함의 허상에 붕 떠있던 우리들에게 올림픽의 본질을 새삼 깨닫게 해 주는 순간이었다.
신앙은 경주다. 분명한 것은 믿음의 영웅들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창세기에 나타난 믿음의 영웅들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거부들이었다. 하나님이 창대한 복을 주셨는데도 그들은 “장막”에서 살았다. 심지어 화려한 애굽의 영화를 누렸던 요셉까지도 마지막까지 그가 꿈꾸었던 땅은 초라한 가나안 땅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땅에서 영화를 누리기보다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히11장) 곧 ‘천성’을 그들의 삶의 중심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예수님도 그러하셨다. 태어나신 말구유도, 사셨던 삶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가 지셨던 십자가는 오히려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그 십자가는 우리 믿음의 본질이다. 세상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믿음을 변질시키지 않고, 십자가를 지는 성도가 될 때 우리는 ‘우리 생애의 최고의 순간’을 주님 안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이고, 나를 위하여 예비된 면류관을 쓰는 영원한 ‘우생순’의 감격을 누리게 될 것이다.
새생명장로교회 정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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