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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微塵(미진)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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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69회 작성일 20-05-2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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嶶塵(미진)

일 년 만에 다시 가본 중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경제대국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올림픽을 2년 앞둔 북경은 비행장으로부터 시작해서 곳곳마다 동양미가 가미된 대형빌딩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심지어 압록강변에 있는 소도시인 단동에서 조차 북한 땅을 마주보며 50층이 넘는 대형 아파트들이 강가에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는 것을 보면서 중국은 더 이상 잠자는 용의 나라가 아닌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중국의 발전은 고층빌딩과 경제력에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기독교인이 족히 1억 명이 넘는다는 보고를 접하게 되었다. 그중에 80%인 8천만명이상은 모두 자생적으로 성장한 가정교회로 구성되어져 있는 폭발적인 부흥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거기에 비해서 중국에 사는 우리 조선족은 어떤가?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 동북 3성(로녕성,길림성,흑룡강성)의 현실은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중국의 대도시들로 이주하게 되어 노인들과 아이들만 남았고 그 빈자리를 대신하여 한족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오고 있다. 그 여파로 동북 3성의 곳곳에 세워진 조선족 처소교회들은 부흥의 꽃도 피워보기 전에 영적지도자의 빈곤으로 시들어가고 있다. 조선족 선교와 북한 선교에 비전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영적 현실을 보면서 남은 지도자를 영적으로 Revitalization(재무장) 하는 사역이 얼마나 중요하고 현실적으로 힘든 것인가를 절감하고 있다.
거기에 비해서 한족교회들은 예상과 다르게 힘찬 성장을 하고 있었다. 십여 년 전에 중국선교를 시작할 때에는 한족교회를 미약하다고 과소평가했었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조선족들 사회에서 한족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왜냐면 조선족 2세나 3세들은 우리말보다 중국어가 더 유창했기 때문에 조선족과 한족목회를 병행하는 분들이 생겨나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통해서 들은 한족들의 신앙은 서서히 달아오르는 용광로와 같고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대로 사는 순수한 신앙의 삶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중국 목회자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12년 전의 일이다. 시카고에서 한인교회의 부목사로 사역을 할 때에 그 교회에 예기치 않은 칠순이 넘으신 중국 손님이 한분 오셨다. 길림성 돈화라는 곳에서 오신 ‘송요한’이라는 장로님이셨다. 천 명 가까이 모이는 교회였지만 단 한명도 중국말을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중국집을 하시는 진선생이라는 화교 한분을 통역사로 찾게 되었다. 그런데 이분도 남방사람이 되어서 북방언어를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때로는 서로 글을 써서 오시게 된 경위와 송장로님의 신앙여정에 대하여 들을 수가 있었다. 문화혁명때 10여년을 옥살이를 하셨는데, 그의 간증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엄동설한에 공안원들이 유리조각을 밖에 뿌리고 그위에 물을 붓고는 얼은 그 위에 무릎을 꿇려놓고는 때리면서 배교를 강요했다고 한다. 공안국의 모진 고통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신앙을 지키신 위대한 신앙인이셨다. 잠시 머무시는 동안에도 시카고에 있는 중국교회에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장로님을 며칠 모시고 있는 동안에 그분의 신앙에 큰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흐른 후에 지난 월요일에 길림성 돈화시를 가게 되었다. 조선족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담임전도사님이 바로 앞 건물을 가르치면서 하는 말이 ‘저 건물은 중국교회인데 교인이 2천명이 넘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십여 전에 시카고에서 만났던 ‘요한’장로님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물었다. ‘혹시 저 교회에 요한이라는 장로님이 계신 곳이 아닙니까? 오래전에 미국에 오셨는데요’. 그랬더니 그분이 ‘목사님 맞습니다. 송요한 장로님이십니다. 성전 건축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 미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듣자마자 ‘지금도 살아계세요?’라는 질문이 나왔고 전도사님은 몇 달 전에 보셨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그분의 신앙의 열정이 떠올라서 그분을 만나고 싶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 전도사님을 졸라 아침 8시에 그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머리가 허옇게 희신 장로님이 문을 열어주셨다. 중국말로 우리를 소개했다. 처음에는 저를 못알아 보셨다. 한참 후에 ‘정목사!’라며 저를 알아보신다. 거기서 안 사실이지만 송장로님은 장로로서 돈화교회의 담임목회를 담당하셨다. 평생을 한 교회를 섬기면서 문화혁명때는 10여년을 옥고를 치르시고 고난과 핍박과 어려움속에서 오늘날 돈화한족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한족목사를 담임목사로 세우시고 은퇴하셨다. 몇 년 전에는 존경받는 중국인의 100인 가운데 기독교인의 한사람으로 표창도 받았다. 은퇴 후에는 중국의 29개의 성 가운데 28개의 성을 돌아다니면서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다.
떠나기 전에 나는 송장로님께 축복기도를 부탁했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예수그리스도" "아멘"뿐이었지만 너무나 뜨거운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떠나기전 그분은 자기의 생애를 담은 자서전인 책 한권을 주셨다. 책 제목이 "미진" ; 嶶(작고, 천한 미), 塵(티끌 진)이었다. 안표지를 보니 (욥30:19)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로 티끌과 재같게 하셨구나"는 말씀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장로님에게 평생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구나, 내가 무엇을 내 스스로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 안에 내가   嶶塵(미진)한 존재 인 것을...

새생명장로교회 (정 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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