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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어머니의 행복한 밥상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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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24회 작성일 20-05-2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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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행복한 밥상" 매년마다 명절이 찾아오면 나는 늘 죄인이 된다. 한국에서는 천만명 이상이 고향을 찾아서 대이동을 하는데 나는 한 번도 그 대열에 끼어 본 적이 없다. 내가 미국 중부 테네시에 살 때에는 명절마저도 잊어버리고 있다가 고향에 내려온 동생들이 모여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야 추석이나 명절인 것을 알았던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들떠있는 동생들의 웃음소리와 부모님의 행복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왠지 이방에 사는 외톨이의 서러움을 느끼곤 했었다. 그런데 지난달 중국의 선교 여정 중에 추석을 2주일 앞두고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에 하루를 머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비록 잠시였지만 일 년 만에 부모님을 뵈올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련마는 나의 마음은 답답하고 무거웠다. 벌써 칠순이 넘으신 두 분이 예전처럼 건강치 않으셨다. 아버지에게는 치매로 보이는 증상까지 약간씩 나타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명색이 장남인 나는 주일 강단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 약속 있는 첫 계명(엡6장)이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부모를 가까이 모시지도 못하는 마음이 늘 무거웠다. 밤늦게 동생과 함께 시골에 도착했다. 주무시다가 우리를 맞이하는 아버지는 상상보다 훨씬 야위셨다. 절을 받으시고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철아, 미국에 가 살자는 네 마음은 알겠는데 나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이 집은 내가 45년동안 교사를 하고 퇴직한 후에 지은 집이다. 사람이 떠날 때가 되면 집에 있어야 하는데 왜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죽어냐 하느냐'며 미국에 안가시겠다고 다짐하시듯 말씀을 하신다. 그러면서 '너는 언제 가느냐' 물으셨다. 주일예배 때문에 내일 간다고 대답하니까 '그래 큰 아들이 애비 집에 와서 하루도 못있는구나...'하시며 눈가에 눈물이 맺히신다. 다음날 새벽, 밖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단잠을 깼다. 어머니와 동생의 분주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리고 기계소리도 들린다. 밖에 나가 보았다. 그랬더니 온 가족이 집 정원에 다 출동을 했다. 정원에는 아버지가 평생 동안 키워 오신 정원수 향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다. 동생에게 어머니가 시골에 내려오면 정원수를 손질하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왜냐하면 작년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손수 정원 작업을 하셨는데 올해는 애지중지 하시던 향나무들을 손질을 못하시니 매일 그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아버지가 우울증에 빠지신 것 같다고 어머니가 동생에게 의논 하셨던 모양이다. 나도 동참을 했다. 얼마 만에 부모님의 일을 돕는가를 생각해보니 벌써 30년이 가까이 된다. 이번이 효도의 기회다 생각하고 나도 양손잡이로 된 전지가위를 들고 향나무에 다가섰다. 아버지는 전지가위를 들고 있는 내 모습만 보아도 신이 나시는 모양이다. 이까짓 것 쯤이야 하며 솟아나온 가지 순을 힘차게 잘랐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가지는 잘라지지 않고 이그러져 향내만 풍긴다. 그래서 힘을 더 세게 해도 안되고 양손에 힘을 빼도 안되고 힘을 어긋맛겨 주어보아도 안되는 것이다. 그것을 보시던 아버지가 가위를 달라고 하시더니 단번에 싹뚝 싹뚝 자르신다. 나는 속으로 '우째 나는 가위질도 못하나'. 그러면서 나온 말이 '우리 아빠, 힘이 정말 세네'. 나는 전지가위는 포기했다. 그 대신 정원 뜰의 흙을 파고 쓰레기를 모으고 하는 동안 아버지와 동생은 나무에 매달렸다. 어머니는 그것을 보고 만족의 웃음을 띠며 안으로 들어가신다. 한참 후에 일을 마치니 어머니가 아침식사가 준비되었다고 하셔서 들어가 보았더니 이게 왠일인가, 상위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한데 접시가 한겹이 아니라 그위에 그리고 맨위까지 세겹으로 차려져 있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행복을 보았다. 어머니의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 5남매가 어렸을 때 남편과 함께 어려운 살림이지만 자식들과 오순도순 앉아서 밥을 먹던 시절이 아름다운 행복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잠시나마 큰 아들, 작은 아들이 같이 와서 돕고 나서 마주 대한 아침 밥상이 그동안 잊혀졌던 추억의 행복을 다시 생각나게 하신 모양이다. 밥상에 앉으신 어머니가 '우리 정목사 미국에서 왔는데 일을 시켜서 미안하네'라고 말씀하신다. 집을 떠나며 나는 두 분을 포옹하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내년에는 가위질 연습을 꼭 하고 와야지... 새생명장로교회 정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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