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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생명의 소산 (20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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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825회 작성일 20-05-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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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소산”

중국산에 대한 불매운동이 한국에 이어서 미국까지 번지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는 공산품으로 인한 무역 분쟁에 이어서 금년에는 위안화의 절상을 요구하는 환률 전쟁에 돌입하더니 지난달부터는 농산물에 대한 유해성을 경고하면서 심지어 불매운동까지 이르고 있다. 유타 주에 있는 어느 식품회사에서는 “China Free"라는 스티커를 부착해서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농산물에 대한 수출은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작년에는 미국이 중국에서만 무려 20억 달러 이상의 농산품을 수입할 형편에 도달하였으니 중국산은 이래저래 미국인 식탁까지도 점령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지난달에 한 2주간을 중국의 곡창지대인 동북 삼성에 있는 농촌 마을들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그 유명한 연속극 “주몽”의 본거지를 방문하게 되었다. 심양에서 차로 한 6시간을 남동쪽으로 달리다보면 백두산 능선 계곡을 지나서 “집안”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약 20만 명이 사는 작은 산골도시였다. 동서남북이 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데, 분지의 남편에는 압록강이 동서로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거기에는 역사책에서만 배웠던 고구려의 거대한 유산인 장군총이 있었고 광개토대왕비와 무덤이 있었다. 집안에는 고구려왕과 장군들의 무덤이 무려 12,000개나 된다고 조선족 전도사님이 알려 주었다. 그 전도사님은 집안시 통틀어서 하나밖에 없는 교회에서 사역하는 고구려의 후예였다.
나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압록 강변에 기도하러 갔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새벽부터 거리에 세워진 새벽시장을 들러보았다. 거기에는 이미 중국인이 되어버린 고구려의 유민(?)들이 가득했다. 시장 아낙네들은 압록강에서 잡은 물고기와 산에서 캐온 산나물, 고추, 파, 햇마늘, 싱싱한 오이, 뽕나무 열매인 오디까지 너무나 눈에 익은 채소들을 가득 가득 쌓아 놓고 손님들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파릇파릇한 수많은 채소들이 가득한 시장을 돌아보면서 “생명력”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땅의 생명력이다. 사실, 우리는 현대 문명이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웰빙 식품을 구입한다. 그런데 그것은 거의 다 자연산이 아니라 인공산이다. 농작물은 성장효소로 자라고 가축들이 먹는 사료에도 인공첨가물이 있고 심지어 해물이라고 해도 바다를 제대로 헤엄쳐보지도 못한 해물을 우리는 비싼 값을 치루면서 먹고 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땅에서 농부들이 땀을 흘려 재배하여 재래식으로 생산한 저 농작물들이야말로 우리가 먹어서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건강하게 만드는 땅의 생명력을 지닌 “푸른 식물”(창1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그 땅을 보니 우리민족의 옛 땅이었던 만주벌은 정말 옥토였다. 흙이 검은 색으로 보일 만큼 기름진 땅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어느 농촌을 가서 보아도 농사를 짓고 밭을 갈며 땀을 흘리는 청년들로 가득했다. 거기에 비해서 한국의 농촌은 어떤가, 땅에 젊은이들이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땅이 “저주받은 땅”(창3장)이라고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땅의 생명력은 무궁무진하다. 거기에 비해서 우리의 생명력은 어떤가, 우리에게는 저주가 아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심겨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왜 우리에게는 생명의 소산이 때를 따라 소출되지 않고 있는가. 그 이유는 농부처럼 땀 흘려 말씀으로 심령을 가꾸며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웰빙 신앙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4:10)

새생명장로교회 정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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