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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LA 나들이(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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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611회 작성일 20-05-2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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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나들이”

미국 중부에서 담임목회를 할 때에 나에게는 3금(禁)이 있었다. 첫째는 한국 식당 안가기, 둘째는 한국 마켓 안가기, 셋째는 비디오 가게 안가기였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유는 조그마한 한인사회에서 목회자로서 몸가짐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교인들이 이것은 목사님이 꼭 보셔야 합니다 해서 보는 맛보기도 간혹은 있었다. 그러다가 그곳 사역을 마치고 안식년 겸 온 가족이 LA로 이주를 하면서 우리 모두는 들떠 있었다. 내게는 3금(禁)으로부터 자유를 맛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LA에 도착해서 짐을 다 풀기도 전에 식구들 모두는 코리아타운으로 나섰다. 한국 식당에 들러서 마음껏(?) 맛있게 먹었다. 그 다음은 한인마켓이었다. 규모로도 수십 배의 차이가 났고 신선도나 풍성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마켓에서 이것저것을 Cart에 담다가 한 곳에 온 가족의 눈이 멈추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붕어빵이 맛있게 구워지고 있었다. 3금(禁)이 몸에 배어있어 그냥 지나치려는데 두 아들이 붙든다.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붕어빵 먹었다고 LA에 소문날 것도 아닌데 싶어서 한 봉지를 샀다. 옛 맛이 지근거려 참지 못하고 모두 그 자리에서 붕어빵을 먹고 있는데 “안녕하세요, 저 모르시겠어요?”하는 말이 들렸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붕어빵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이게 누군가, 15여 년 전 LA에서 교역자로 사역할 때 가르치던 중학생이 청년이 되어 반갑게 인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쉬운(?) 이별을 하고 나서 생선부 앞에서 싱싱한 생선들을 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여기 웬일이세요?” 전에 목회하던 곳에서 한국 식당을 하시던 아주머니가 어느 날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하필이면 거기서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가슴이 떨렸다. LA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감찰하시고 계시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우리 갑시다” 말하면서 Cart를 재빠르게 움직이는데 “정 목사님이 어떻게 여기에 계십니까?”하며 어깨를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20여 년 전에 같이 공부했던 목사님이셨다. 거기서 나는 안식년이라고 방종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자유를 만끽(?)하고자 했던 나에게 3금(禁)의 소중함을 새삼 발견하게 하신 것이다.
어느새 세월이 그후로 5년이 흘렀다. 지난 주 모처럼 아내와 LA로 나들이를 갔다. 볼일을 마치고 한인 마켓에 들렀다. 아내는 음식을 머릿속으로 만들면서 필요한 것을 빠른 손놀림으로 이것저것 사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시집와서 밥상에 새 반찬이 올라갈 때마다 버지니아 장모님께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하는 동안 배곯이 했던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나도 열심히 아내를 쫓아 Cart로 바쁜 걸음을 하는데 뵈온지 정말 오래된 노부부를 만났다. 첫마디가 “아니 이렇게 변했어, 총각 때는 삐쩍 말랐었잖우!” 그러고 보니 그분들을 처음 만났을 때가 20년이 훨씬 넘어있었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몇 년 전에 LA 첫나들이 했던 생각이 났다. 3금(禁)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세월이 참 빠르다. 올 해도 어느덧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나 같은 죄인을 주의 종으로 불러주신 그 부르심에 합당한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스럽다. 첫 담임목회를 하면서 3금(禁)을 지키며 어찌하던지 흠 없는 목회자가 되려고 노력했던 그때가 새삼 더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지막 한 달을 남겨놓고 더욱 더 주님 앞에서 근신하고 절제하며 덕을 끼치는 목회자로 살기 위해 오늘의 나의 3금(禁)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새생명장로교회 정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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