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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된 목사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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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612회 작성일 20-05-2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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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중에는 난 목사와 된 목사가 있는 것 같다. 난 목사는 타고난 자질이나 서원기도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목회자의 길이 일찍부터 정해진 목사이다. 반면에 된 목사는 목회자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다가 하나님께 붙들려서 주의 종이 된 목사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난 목사가 아니라 된 목사다. 목사가 되는 것은 고사하고 신학교에 가는 것만도 너무나 힘든 결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신학 공부가 아니라 인생 공부였던 것 같다. 그런데 더 힘들었던 것은 신학교에서였다. 나에게는 근엄한 목소리도 없었고, 찬송가도 곡조에 맞추어서 은혜롭게 부를 능력도 없었고, 남 앞에서 유창하게 설교를 할 만한 담력도 없었다. 어떤 전도사님이 나를 보더니 '전도사님도 이제는 안경을 쓰셔야겠습니다. 그래야 신학생 티가 나지요'하면서 치켜 올리는 그의 금테 안경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보였던지. 그러다가 눈이 갑자기 나빠져서 거금을 주고 금테 안경을 맞추어 쓰고 나서 황홀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된 목사가 되기 위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결혼이었다. 나는 인생의 꿈을 포기하고 신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아내를 바로 주실 줄 믿었다. 그러나 매년마다 동료 전도사들의 결혼 축의금을 내는 횟수만 늘어갈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초면인 사람들이 물어보는 말이 '결혼을 했습니까'에서 '아이가 있습니까'로 변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국 남부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곳에서 공부를 해보니 너무나 좋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 문제로 기도하고 있던 중이었다. 전적으로 신학공부만 하고 싶었는데 길이 열리지 않았다. 하나님이 아내를 주시면 떠나겠다고 했더니 하는 말이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 친구도 나처럼 된 목사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하나님을 믿기로 했다. 사모님은 그 친구가 나를 미시시피주 시골로 부른 죄로 하루가 멀다 하고 밥을 해대었다. 친구가 나보다 먼저 신학교를 졸업하고 버지니아로 떠났다. 졸업을 앞둔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 전화가 또 왔다. 여기에 좋은 자매가 있으니 올라와서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마침 목사고시가 버지니아에서 있었다. 목사고시에 합격한 날 저녁에 그 자매와 만났다. 이번에도 친구 집에서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다. 드디어 하나님이 예정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서부가 아니라 동부에서, 신학을 다 마치고 목사고시를 합격한 날 저녁에 만남을 예비하셨을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결혼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드디어 나는 된 목사가 되었다. 나는 목사가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proud했다. 힘들고 어렵게 목사가 된 나에게 사역은 그 어느 것 보다 귀중했다. 특별히 아내에게는 더 했다. 왜냐면 목사가 될 때까지 꼭꼭 숨어 있다가 나중에야 나타났으니 갑자기 사모가 된 아내와의 부부싸움의 이슈는 항상 ‘사모’이었고 사모학 강의를 했다. 테네시주에서 개척교회를 할 때도 된 목사의 기질은 여전했다. 교회가 성장하면 할수록 된 목사의 기세는 높아가고 사모의 짐은 무거워져만 갔다. 어느 날 서로가 한계가 왔다. 지쳐있던 내가 옆을 보았더니 상처투성이가 된 사모가 아닌 아내가 있었다. 그때서야 사모가 아닌 아내가 내 눈에 들어오기를 시작했다. 남편을 위해서 개척교회의 고생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버티다가 상처투성이가 된 아내. 그런데도 사모이기만을 요구했지, 남편으로서 아내를 감싸주지도 위로해 주지도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서야 나는 된 목사를 포기했다. 금테 안경도 싫었다. 아내를 치유하기를 시작했다. 아내를 아내로 대해주고 강단에서 설교한대로 내가 먼저 아내에게 실천하기 시작하니 워낙 훈련(?)을 잘 받은 아내는 곧 치유함을 받았다. 아내가 회복되니 나도, 교회도 다시 회복되어 목회의 첫 사역을 잘 마칠 수가 있었다.
켈리포니아 얼바인 지역에서 두 번째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3년 전에 암 선고를 받았다. 우리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도 맛보았고 투병생활을 통하여도 주시는 특별한 행복을 경험을 했다. 지난 주간에 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사모님이 암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아내랑 친구 집에 달려갔다. 친구가 하는 말이 내가 죄인인데 하나님이 나를 치시지 왜 나 같은 사람을 만나서 고생만 한 착한 아내를 치시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나도 3년 전에 하나님께 똑같은 말을 했었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야!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이잖아. 치료는 하나님께 맡기고, 사모님과 행복하게 투병생활을 하여 그 어려움을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바꾸자”.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8:17)

새생명장로교회 정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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