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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추억의 새벽송”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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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295회 작성일 20-05-2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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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으니 세월이 너무나 빠르다. 날아가는 세월을 부채질이라도 하듯  어떤 판촉 광고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미리 크리스마스”로 바꾸기까지 하면서 소비자들을 부추기기도 한다. 우리 교회는 지난주에야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다가 아롱다롱한 장식을 달고 전구들과 어울려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지만 왜 그런지 어설프다. 아마도 그 이유가 성탄은 설렘으로 맞아야 할 것 같은데 세월에 억지로 끌려서 온 자구지단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강단에 설 때마다 은은하게 풍겨나는 전나무의 향 내음이 너무나 좋다.
어린 시절 성탄절마다 고향 시골교회에 장식했던 전나무의 향기는 성전을 가득 채우고도 넘쳤다. 교회의 청년들이 산에 가서 구하기 어려운 전나무를 톱으로 잘라 리어카에 싣고 와  성전에 장식하는 날은 어린 나에게 있어서는 잔칫날과 같았다. 시골의 작은 교회였지만 매년마다 성탄절이 되면 주일학교에서는 거창한 연극을 했었다. 주제는 늘 the Nativity(예수탄생)이었다. 나는 중요한 역할인 요셉 역을 맡곤 했다. 왜냐면 요셉은 마리아 옆에 서있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런데 새벽송은 달랐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새벽송을 따라가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매일 새벽을 깨우는 목사가 되었나보다. 새벽송은 크리스마스 이브행사가 끝나고 예배당에서 중고등부 학생들이 재미있는 게임들을 하다가 밤12시가 되어서야 성가대와 함께 출발하였다. 당시에 초저녁잠이 많았던 나로서는 그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한번은 새벽송을 따라가려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졸려서 예배당에 앞편에 있는 방석을 모아 놓은 방에 들어가 잠깐 자다가보니 아침을 맞이하는 바람에 방성대곡(?)을 한 적도 있었다.
어느 해인가, 드디어 대망의 새벽송에 당당하게 합류했다. 출발 시간은 정확히 밤12시였다. 예배당 밖을 나가니 그 사이에 눈이 내려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은 맑게 빛나고 주위에 수많은 별들과 성운들이 눈에 쏟아질듯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산타”는 믿지 않았지만 혹시 “산타”가 오면 지금 이 시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성가대원은 어느덧 논두렁을 지나고 작은 산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대원들이 성탄 캐럴을 부르다가 그치면 쌓인 눈을 ‘뽀드득’거리며 밟는 소리도 환상적이었고 신발창에 부드럽게 느껴지는 눈의 감촉이 그렇게도 좋을 수가 없었다.
대원들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어느 집에 멈추었다. 대문은 싸릿문이었다. 집안 마당에는 장작이 타고 있는 것을 보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 집에는 여러 곳에서 시끄럽게 짖어대던 그 흔한 개도 없었다. 우리는 조용히 싸릿문을 열고 들어가서 불타는 장작더미 앞에서 모여서 찬양을 시작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찬양소리가 초가집을 에워싸고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 귀에는 아직도 그날의 아름다운 찬양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잠시 후 방안에 있던 중년부부가 문을 열고 나와 고무신을 신고서 마당 안쪽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서있는 모습이 양떼를 치던 목자들처럼 너무 경건한 모습이었다.
찬양 부르기를 마치니 집주인은 우리를 추운 마루에 앉게 하고 부인은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한 상 가득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무우국과 지금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무우떡을 내왔다. 우리는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아마 그것이 나의 첫 심방이었던가 보다. 그 다음은 생각이 잘 안 난다. 이 집 저 집을 다니다가 새벽녘에 기진맥진해서 돌아와서 잠을 잤을 것이고 꿈속에서도 나는 새벽송을 불렀을 것이다. ~아기 잘도 잔다-아기 잘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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